12월 26, 2009의 보관물

진단적 안경을 쓴 우리

12월 26, 2009

………………”우리는 체계화와 단순화를 위해 진단적 분류를 이용한다. 그러나 어떤 분류 체계를 생각해내면 필연적으로 그 밖의 다른 것을 무시하는 과정이 따른다. 물론 무시한 사실들 때문에 차이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바로 이 부분에 함정이 있다. 마음속으로 일단 분류를 해놓으면 카테고리에 들어맞지 않는 사실들은 아예 인지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정보화 시대에는 매일 너무나 많은 정보 홍수 심지어 폭격 속에서 살기 때문에 그것을 적당히 걸러내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런 사람들의 정보화 시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경험을 통해 의미를 구축하는지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심리학자 프란츠 엡팅이 한 말이다. 여기서 진단적 안경'(diagnostic glasses)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가 늘상 내리는 의사결정 판단 기준에는 일종의 프레임이라 할 수 있는 ‘diagnostic glasses’ 를 통해 투영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사람들이 좀처럼 중립적이고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힘든 이유라고 설명한다.

상대방이 말 한마디에도 우리의 판단과 생각의 차이를 좌우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미시간대 해롤드 켈리 교수가 한 실험에 의하면,

경제학 수업 듣는 MIT공대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직전 조교가 담당교수가 일이 생겨 대체강사가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며 소개서를 주며 수업 후 강사평가를 해달라는 실험에서, 학생들이 받은 강사 소개서는 두 종류였다.

1. “OOO씨는 MIT 경제사회과학과의 대학원생이다. 그는 다른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심리학을 가르쳐본 적이 있으나 경제학을 가르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6세로 군대를 제대했으며 기혼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마음이 따뜻하고 성실하며 비판적이고 실무에 밝으면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2.  “OOO씨는 MIT 경제사회과학과의 대학원생이다. 그는 다른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심리학을 가르쳐본 적이 있으나 경제학을 가르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6세로 군대를 제대했으며 기혼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마음이 차갑고 성실하며 비판적이고 실무에 밝으면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같은 강사이지만 소개서에서의 차이는 단 하나, 바로 따뜻하다와 차갑다 였지만 강사평가에서는 학생들이 전혀 다른 강사를 평가한 것처럼 결과가 달랐다고 한다.

…… 강사를 ‘따뜻한’ 사람으로 소개받은 그룹의 학생들은 대부분 그를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친절하다, 타인을 배려한다, 격의 없다, 사교적이다, 인기 있다, 유머감각이 있다, 인간적이다’ 등의 단어를 써서 강사를 묘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가운’ 사람으로 소개받은 그룹은 똑같은 수업을 들었지만 대부분 그 강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강사에 대해 ‘자기중심적이다, 딱딱하다, 붙임성이 없다, 화를 잘 낸다, 유머감각이 없다’ 등의 단어로 그를 묘사했습니다………….

이렇게 단어 하나에도 우리는 바라보는 대상, 사람, 사물에 대해 다르게 인식하고 일종의 프레임 안에서만 판단하려고 하며 제한된 정보 수용을 통해 생각과 판단의 범위를 극히 좁혀버리는 불안정한 의사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어하나 표현하나를 통해서도 이런 점들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내용출처 : 예병일의 경제노트 중에서 …………